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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본다.(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카테고리 없음 2021. 10. 5. 12:29

    일기 속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들어 있다.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졸업 후의 또 다른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를 맛봤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도중에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남은 채로 버티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사람들은 남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남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걸. 파도를 이기든 지든 보는 경험이 나를 숙련된 뱃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걸.다시 새로움을 느껴야 할 때, 크기를 알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되찾는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위로하고, 쓰다듬고,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인 뒤 과감하게 등을 떠밀고, 다시 세상으로 되돌려준다'. 여러 갈래의 길로 갈라진 평행우주 속에서 용감하게 떠난 나와 용감하게 남은 나, 모든 것을 찬양한다. 그렇게 한 걸음 더 내딛는 훈련을 한다. May the force be with me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p3132.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가는 엄마도, 달려가는 아빠도 아니다. 가면서도 뛰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에 대해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분야가 달라서 직접 뵙고 얘기할 기회는 별로 없었는데 언젠가 그 학과의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서 "그 교수 어떠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남초사회에 정착한 여성 과학자는 늘 호기심과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어떤 성향인지, 연구 스타일은 어떤지, 강의는 어떤지, 요즘은 주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대답은 그러네요.아이가 아프면 학교에 못 올 때도 있어요였다. 내가 보기에는 정년을 앞두고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자기 대학원생들을 늘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교수님인데 고작 그런 눈길이라니. 그런데 어린 대학원생의 시야가 그렇게 구태의연하다니 나는 정말 놀랐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p 107108.

     

    취향이 비슷한 친구이기도 했고, 그냥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가끔 한 번 만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병중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한편으로 알지 못했다. 그 사람과 늦게 연락도 하지 못하면서 여러 해를 보냈고, 그 와중에도 나는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건에 휘말려 감정에 사로잡혔다. 많지는 않았지만 친구도 만나고 만나지 않았고 친구의 친구들끼리 문제가 생기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고 함께 휘말리기도 했다. 결혼해 아이를 갖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표현과 단정할 수 없는 감정과 마주쳤다. 그것은 「예」나 「아니오」가 아니었다. 기쁨이나 슬픔도 아니었다. 분노나 절망도 아니었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112.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워왔다.

    저는 이번에 성인이 되면 우주비행사가 될 거예요.우주 비행선을 타고 높이 우주로 날아갈 겁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어 뭐라고?안 돼! 노래는 계속됐어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을 건너 은하계를 여행할 때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인사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거의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 그럼 엄마 슬퍼하실 것 같은데' '그냥 노래야. "엄마랑 같이 지구에서 살자" "응!"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pp 154155.

     

    언젠가 일몰을 보려고 충동적으로 관악산에 오른 적이 있다. 정상에서 멋진 노을을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떨쳐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려오다 보니 사방이 캄캄해지고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등산로 바위인지 마른 계곡인지 몰라 낙엽 밟는 내 발자국 소리가 나를 위협해 올 무렵 두 개의 빛이 보였다. 하산 길에 내가 올라가는 걸 봤다는 등산객 부부였다. 날이 어두워질 텐데 아무런 장비 없이 혼자 휘청휘청 산을 오르는 나를 보며 혹시나 하고 산 중턱에서 기다렸다고 말했다. 좌절한 젊은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걱정했지만 다시 나타나 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좌절한 것이 아니라 그저 경솔한 것일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한 일시적 존재"를 위해 어두운 산에서 랜턴을 들고 기다려 주다니. 나눠 준 랜턴을 들고 앞서가는 어른들의 발자취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그날 저녁은 참으로 따뜻했다.석양을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나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왜 슬픈지 묻지 않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것이 43번째인지 44번째인지 추궁도 하지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묻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는 슬플 때 해가 지도록 명령할 수는 없지만, 해가 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줄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도움이 된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pp164165.

     

    무엇이 되려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그리고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고 인생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안개 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될 수는 있었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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